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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8 경복궁 관람 GoGo~! (20)
  2. 2007.08.27 역사 속의 영혼들이 머무는 곳 (2)

오랜만에 가본 경복궁

이번주 들어 본격적으로 따뜻해진 것 같습니다.
좀 많이 늦었다 싶은 포스팅이지만 3월 1일에 경복궁 다녀온 사진들을 올려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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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던 삼일절날 남자친구와 저는 경복궁 출사를 갔습니다.
대인 1인당 3,000원씩 입장료를 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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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수문장 교대의식이 있었는데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시간 정각에 한다고 하니 경복궁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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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전정의 모습입니다.
국가 의식을 치르고 신하들의 하례와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라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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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신기해서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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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면서도 힘차게 뻗은 처마의 모습이 근사해서 찍은 사진 입니다.
이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지만 어린친구들이 견학와서 경복궁에 대해 설명듣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저도 옆에서 살짝 설명을 같이 들었는데 경복궁에 대해서 좀더 알고 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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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경회루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의 경회루를 보면서 이곳에 왔던 외국사신들이 얼마나 감탄했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바람이 많이불고 추워서 생각보다 사진을 많이 담지 못했는데요.
다음에 경복궁같은 문화시설에 가기전엔 사전조사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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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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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문장 교대의식 생각보다 규모가 크군요. 재미있을 것 같네요. ^^

    2009.04.08 09: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르쵸??
      저도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어요~+_+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전 사진 많이 못찍었는데
      남자친구는 멋진 사진을 많이 찍더라구요~^^

      매시간 정각에 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2009.04.09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2. 경복궁도 사진을 찍기 괜찮은 곳인거 같아요.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

    2009.04.08 10: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주용파파님 트랙백 감사드려요~^-^
      저도 바로 남겨드렸어요~!
      다음에 또 기회되면 사진찍으러 가고싶네요~>_<//

      2009.04.09 09:58 신고 [ ADDR : EDIT/ DEL ]
  3. 초등학생 때 가보고 이후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군요;; 그래서 그런지 고궁이라고 하면 어쩐지 낡은 느낌이 먼저 드는데, 이렇게 보니 또 멋지다는 생각도 드네요 :-)
    으~ 봄바람이 카메라를 자극합니다아~ ^^ ㅎㅎㅎ

    2009.04.08 10: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Rukxer님도 사진 잘 찍으시니까~
      저보다 근사한 사진 찍으실것 같아용!^-^

      카메라들고 밖으로 gogogogogo~ㅋㅋ

      2009.04.09 09:59 신고 [ ADDR : EDIT/ DEL ]
  4. 이때쯤 다시 한번 가시면 완전 좋을거 같은데요...날도 따뜻하고..파릇한 풍경에 경복궁

    2009.04.08 13: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르게 말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져서 너무 좋네요!
      오늘은 반팔입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씨~ㅋㅋ

      2009.04.09 14:48 신고 [ ADDR : EDIT/ DEL ]
  5. 저는 수문장 교대식이 너무 보고 싶은데.. 갈때마다 타이밍이 안맞아요.. ㅡ.ㅜ
    요즘 날씨가 좋아서 경회루에 올라 느긋하게 풍류(?)를 즐기고 싶네여 ^^ㅋ

    2009.04.08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요즘 정말 날씨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전 1박 2일로 워크샵 다녀왔는데...
      안면도도 다음에 개인적으로 따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수문장 교대식 매시간 정각에 하는데
      다음엔 맞춰서 가보셔요~!

      2009.04.11 19:37 신고 [ ADDR : EDIT/ DEL ]
  6. 저 완전 많이 갔었는데 ㅋㅋㅋ
    광화문 주변.. 지방 청사 앞 도렴 빌딩에서 지난달까지 일했었거든요 ㅋㅋ
    그래서 점심 먹구 자주 갔던.. ㅋㅋ
    그 땐 박물관 입장도 공짜라서 완전 신기하게 둘러봤었다죠 ^-^

    근데 입장료가 있어서 경회루는 안가본^^;;

    2009.04.08 16: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다래님 그 근처에서 일하셨군요. ^_^
      박물관 무료 관람 좋은데요??
      전 저날 너무 추운 바람때문에 지쳐서
      사진도 거의 많이 안찍고 제대로 구경 못했어요.

      2009.04.11 19:38 신고 [ ADDR : EDIT/ DEL ]
  7. 저도 경복궁은 많이 가봤는데 역사는 잘 몰라요.ㅜㅜ
    학생들이나 외국인 관광객틈에 껴서 들어야겠어요.
    ( 아 , 지금생각하니 외국인은 안되겠군용 못알아들을터.ㅋㅋ )

    2009.04.08 17: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두요~뭔가 사전조사를 하고 갔으면
      더 좋았을걸 싶지만...늘 그렇듯이 그냥 간거라서~^^;;
      어린 학생들이 훨씬 똑똑하더라구요!

      2009.04.11 19:39 신고 [ ADDR : EDIT/ DEL ]
  8. 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경복궁 ㅎㅎ

    날씨좋고~ 사진 좋고~~^^

    2009.04.08 21: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날씨 좋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습니다.
      저도 경복궁 오랜만에 가봤었어용~^-^

      2009.04.11 19:40 신고 [ ADDR : EDIT/ DEL ]

  9. 날씨 정말 좋네요~!
    사진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2009.04.09 14: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진 속으로 뛰어드세요!!ㅋㅋ
      1박 2일로 워크샵 갔다가 좀전에 집 청소하고 막 컴퓨터 앞에 앉았네요.
      내일 과연 꽃놀이를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_ㅠ

      2009.04.11 19:40 신고 [ ADDR : EDIT/ DEL ]
  10. 봄이라 그런지 고궁의 모습이 따뜻해보이네요.
    언제 한번 경복궁 꼭 가봐야 될텐데..ㅎ

    2009.04.10 0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월 30일, 4월 같지 않은 무더운 날씨에 나는 지하철을 타고 종묘로 향했다. 1시 50분쯤에 종묘에 도착해서 2시에 시작되는 궁궐지킴이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갔던 4월 30일 다음날이 종묘대제가 열리는 날이라서 그런지 종묘는 다른 때 보다 분주해 보였다. 무더운 날씨여서 그런지 궁궐지킴이의 설명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나 혼자 단독으로 설명을 듣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나의 신분을 밝히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지킴이언니는 궁궐지킴이에서 나온 자원 봉사하는 학생이었다. 원래 자기도 찢어진 청바지 입고 다니고 노는 거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런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종묘 설명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킴이 언니가 나를 데리고 종묘 정문을 다시 나와 하마비 앞으로 갔다. 하마비란 이 앞을 지날 때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이다. 사전정보를 모을 때 알고 있었던 하마비였는데 지킴이 언니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역사속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엄숙한 곳이기에 예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었다. 나 역시 하마비 앞에서 마음을 다잡고 종묘정문으로 향했다.

 



  종묘정문에는 종묘대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1년에 한번 올리는 종묘대제가 5월 1일에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날 열리는 종묘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및 56호로 옛 제례 의식 그대로 재현 봉헌되고 있는 행사이다. 정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지킴이 언니는 종묘로 향해 가고 있는 이 지면이 옛날엔 훨씬 더 낮았다고 했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도로를 정비하면서 지면이 높아졌다고 했다. 종묘가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하늘과 맞닿아 있고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더 지면을 높게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정문과 가까워지자 아무생각 없이 거닐었던 지면이 일제시대 때 높아졌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정문 앞에 남아있는 단벌의 장대석 기단이었다. 원래는 계단으로 오르내렸었는데 지금은 땅에 묻혀 기단만이 남아있었다. 종묘를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는 일제의 악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한나라 백성들이 모시는 왕들의 신위를 모시는 곳을 쉽게 생각해버리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마음 한 편이 씁쓸했다. 일제의 만행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니 역사의 흐름 속에 고쳐지지 않는 흔적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문을 지나 종묘 안으로 들어가자 세 갈래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운데 길은 신로라고 부르며 평상시에는 제사에 쓸 향과 축문을 든 제관만이, 새 신주를 부묘할 때에는 신주를 모신 관리만이 이 길로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왕은 신로의 오른쪽, 세자는 신로의 왼쪽으로 걷도록 하였는데, 이렇듯 세 갈레 길을 만든 것은 영조 16년 4월의 일이라고 한다.
  종묘 안에 들어서면 이렇게 세 갈레의 길이 계속 이어진다. 종묘정전 안과 망묘루 안까지도 모두 이렇게 세 갈레의 길로 되어있다. 이렇게 나눠져 있는 길을 따라 걷자 종묘의 엄숙함이 더욱 느껴졌다.



  세 갈레의 길옆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나는 지킴이 언니한테 종묘 안에 연못이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다. 언니 말에 의하면 종묘는 영혼을 모시는 정적인 곳인데 너무 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약간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동적인 요소로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의 연못은 득수법으로 만들어져 물이 저절로 베어져 나오고 저절로 흘러나갈 수 있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꽃이나 물고기 같은 건 없었다고 한다. 영혼을 모시는 곳이기 때문에 엄숙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못은 ‘천원지방’이라는 사상을 따라 가운데는 둥글고 바깥은 각이 있는 네모모양 이었다. 연못의 모양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고 생각하여 가운데 둥근 하늘을 드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운데 둥근 곳에는 향나무가 심겨져 있었는데 우리나라 문화재에는 원래 소나무를 심은 것이 원칙이지만 종묘는 영혼을 모시는 엄숙한 곳이므로 향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연못을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가자 망묘루가 나왔다. 망묘루는 제향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부쳐진 이름이다. 망묘루는 다른 곳과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초석이 다른 곳 보다 높았다. 마침 어떤 전주이씨 할아버지께서 검은 가방을 초석 앞에 놓으셨기에 비교대상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오른쪽 사진에서 보이듯이 망묘루의 초석은 비교적 높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망묘루는 다른 곳과는 달리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그 이유는 망묘루 앞에 지당이 있는데 이 연못을 바라보는 곳으로 정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종묘 안의 대부분의 건물은 맞배지붕의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경복궁이나 창경궁과 같이 화려함을 중시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지붕형식도 맞배지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망묘루 뒤에는 공민왕 신당이 있었는데 왜 공민왕만 따로 이렇게 신당을 만들어 두었는지 지킴이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사전정보 조사를 하면서 이 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정확한 문헌으로 남아있는 자료는 없으나 역사적인 짐작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을 세우신 태조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공민왕의 반원사상을 높이 사고 또한 개혁의지와 북방정책을 존경했기 때문에 이렇게 따로 모시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망묘루 왼쪽에는 향대청이 있었는데 이 곳은 9칸 반으로 되어있으며 제례 때 쓰이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향대청 안쪽에는 제례관들이 머물렀던 곳도 있다고 했으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향대청을 본 뒤 지킴이 언니를 따라 간곳은 재궁 이었다. 내가 사전조사를 할 때는 어숙실이라고 알던 곳이었는데 지킴이 언니 말에 의하면 어숙실이라는 표현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이곳은 임금님께서 제례 전에 머무시는 곳으로서 재궁이라는 표현이 알맞다고 했다. 재궁의 안쪽에도 세 갈래의 길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가운데는 임금이 오른쪽은 세자가 왼쪽은 임금과 세자가 쓸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길의 배치에 맞게 가운데 있는 공간이 임금이 머무는 곳이었고 오른쪽에 있는 공간이 세자가 머무는 곳이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공간은 임금과 세자가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을 함으로써 몸가짐을 정결하게 하는 곳이었다. 임금이 머무시는 공간 왼쪽에는 조그마한 화기가 있었는데 물을 담아놓고 불을 끄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불을 끄기 위한 용도보다는 화기에 있는 하마문양이 불이 나지 않도록 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종묘에 있는 건물들은 목조건물들이기 때문에 불이 나면 흔적도 없이 다 타버리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나마 이런 화기를 두어 불이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재궁의 임금이 머무는 곳과 세자가 머무는 곳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지붕 끝의 장식을 비교할 수 있었다. 임금이 머무는 곳은 큰 용두로 되어있어 좀더 화려하게 되어 있었으나 세자가 머무는 곳은 용두이긴 하지만 크기가 좀 더 작은 용두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임금이 머무는 곳은 양성회칠이 되어있었는데 이것을 해 놓은 곳은 격이 높은 건물을 뜻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종묘대제를 1년에 춘, 하, 추, 동, 동지 이렇게 5번 올렸다고 한다. 임금은 제례를 올리기 일주일 전부터 여자도 멀리하시고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도 피하셨다고 한다. 제례를 보통 새벽에 올렸는데 하루 전에 오셔서 머무시는 곳이 바로 이곳, 재궁이라고 한다.




  재궁을 따라 나오면 또 세 갈래의 길이 나누어져 있는데 가운데는 임금이 오른쪽은 세자가 왼쪽은 영의정이 걷는 곳이라고 했다. 제례를 올릴 때도 1번째 술은 임금이 올리시고 2번째는 세자가, 3번째는 영의정이 올린다고 했다. 임금은 제례를 올릴 때 구장면복을 하시고 면류관을 쓰셨는데, 면류관에 달린 구슬이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반보씩 합보하시며 걸으셨다고 한다.
  정전 앞에는 판위대가 놓여있었는데 전하판위와 세자판위가 있었다. 임금과 세자는 제례를 모시기 전에 이곳에 올라서서 다시 한번 마음을 정결하게 가다듬는다고 한다.
  정전에 들어가기 전에 지킴이 언니가 찬막단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제례 때 올리기 위한 음식들을 상에 올리기 전에 임시로 놔두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 준비된 음식들을 제례에 올리기 전에 위생상태가 깨끗한지 점검하고 상에 올렸다고 한다.
  찬막단 앞쪽으로 성생위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제례 때 올릴 소, 양, 돼지 등의 재물을 평가했다고 한다. 제례에 올릴 가축들을 따로 길렀기 때문에 다른 가축들에 비해서 품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성생위 뒤 쪽에 전사청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 곳은 부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온장고, 냉장고도 있으며 제례에 올릴 음식들을 만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정전 앞에 있는 판위대, 찬막단, 성생위, 전사청을 둘러본 뒤 드디어 정전으로 향했다.
 



  위 사진은 정전 남문 앞에 있는 신방목 이다. 뒤에 설명할 영녕전 신방목과 차이가 나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정전 남문에 있는 신방목은 태극무늬에 색깔도 있지만 영녕전의 신방목은 단순한 태극무늬에 색깔이 없다. 그리고 초석 또한 정전과 영녕전이 차이가 난다. 정전의 초석은 둥글게 다듬어서 만든 초석이지만 영녕전의 초석은 그에 비해 밋밋하고 투박하게 만들어졌다.
정전 남문의 단청을 보면 정록단청으로 되어 있으며 문 위쪽에는 공간이 있어 신들이 드나들 수 있게 해 놓았다. 이처럼 정전 남문은 혼백이 출입하는 곳이므로 사람은 드나들 수 없다고 한다.
  제례 때 헌관이 출입하는 정전 동문으로 들어가면 동․서월랑을 포함하여 101m나 되는 장중한 정전이 나온다. 정전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종묘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다. 정전의 기둥과 기둥 사이가 구성의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이의 방 한 칸을 신실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전은 이런 방 한 칸 한 칸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제일 뒤에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고 그 앞에 제사 지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것은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 구성이며 최대 구성이기도 하다.
  건물은 화려한 장식을 거의 가미하지 않은 단순한 형태를 취하면서 크고 웅장한 멋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주춧돌은 아랫부분을 반듯하게 사각형 모양으로 가공하고 반듯한 원형받침을 새겨 올렸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기둥은 보통 굵기가 40㎝를 약간 넘는 굵은 것이고 높이는 대개 굵기의 8~9배 정도인데 약간의 배흘림이 가미되어 그 웅장한 멋을 더한다. 이러한 배흘림 기법은 멀리서 건물을 봤을 때 안정감과 균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전통적인 건축기법이다.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는 익공식이라 부르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방법으로 단조롭고 극히 생략적인 요소가 강하다.
  목재의 표면은 울긋불긋한 단청을 칠하지 않고 주칠로만 마감하여 마무리 부분은 녹색으로 칠하여 색깔의 사용도 극도로 절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신실 한 칸 한 칸은 모든 부분이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엄숙함을 갖고 구성되었으며 이 신실이 19칸으로 길게 연속되면서 종묘 정전의 전체 건축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붕 역시 19칸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는데 지붕을 덮은 수키와, 암키와의 세로로 된 골이 끝없이 길게 옆으로 이어지며 지붕 꼭대기의 용마루는 하얀색 회칠을 한 흰 선이 긴 수평선을 이루고 있다.
 


  정전 앞의 돌계단과 그 일대를 월대라고 하는데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월대는 정전 울타리 안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그 크기가 동서가 109m, 남북이 69m로 우리나라 건물의 월대 중 가장 큰 것이다. 월대 바닥은 한 변 약 45㎝ 정도의 거칠게 다듬은 박석이 빽빽이 깔려져 있다. 하월대 북쪽으로는 상월대가 한단 높게 마련되어 있는데 역시 박석이 전체 바닥을 덮고 있다. 상월대와 하월대에는 각기 정면 세 군데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가운데 계단은 월대 중앙에 남북으로 나 있는 신로와 통하는 것으로 사람이 오르내릴 수 없고 혼백만이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한다.



  월대에 쓰인 박석은 화강암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약간 울퉁불퉁하며 소리를 흡수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월대는 가운데가 둥글고 높게 되어있으나 월대 끝 쪽으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둥글게 꺾여 있어서 물받이를 통해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정전을 살펴본 후 정전 담장안의 다른 공간들도 살펴보았다. 정전을 중심으로 동남쪽을 바라보면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창건 때는 3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고 한다.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의 규모에 가려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 공신당 역시 역대 왕의 배향 신위가 늘어나 종묘 정전이 증축됨에 따라 이와 함께 동쪽으로 이설되며 증축되었다. 공신당 전면 중앙부 세 칸에는 판문이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 칸에는 벽체를 마감하여, 그 상부에 광창을 설치하였다. 위패를 모신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나머지 세면의 벽 또한 전벽돌로 마감하였다. 공신당에는 조선 태조의 공신을 비롯하여 27대 순종까지 정전에 모신 역대왕의 공신의 신주 83위를 배향하고 있다.
  공신당 맞은편을 바라보면 공신당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조그마한 공간이 보이는데 이곳을 칠사당이라고 한다. 칠사당은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왼쪽에 있던 곳으로 계절별 일곱 소신의 위패를 북쪽을 윗자리로 하여 건물 내부에 모시고 제향하던 사당이다. 이곳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마감하였다.
  정전내부의 공신당과 칠사당까지 다 둘러본 후 정전 서문을 통해 영녕전으로 향했다. 정전 서문은 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악공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다른 문과 규모의 차이를 두었다고 한다. 한 칸으로 만들어진 서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영녕전이 보였다. 건물과 묘정의 규모에서도 정전보다 작게 하여 정전에서와 같은 장대함을 느끼기에는 뒤지는 감이 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공간이 한눈에 쉽게 들어왔다.



  영녕전은 세종 3년, 정전에 모시던 태조의 4대조 목왕, 익왕, 탁왕, 환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태실 4칸, 동·서익랑 협실 각 한 칸의 별묘로 처음 지었다고 한다. 세종 때 정종이 승하하여, 정전 감실에 신위를 모실 공간이 모자라자 중국 송나라때 따로 별묘를 세웠던 예를 채택하여 짓게 된 것이다. 이는 현재 중국의 종묘제와는 다르게 구분되는 조선왕조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좌우 협실에는 종묘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셨다.
  영녕전은 가운데 태조의 4대조를 모신 네 칸을 그 좌우의 협실 여섯 칸보다 높게 하여 위계를 달리하고 있다. 내부 공간은 틔여 있으나 가운데 신실과 좌우 협실 사이는 벽을 두어 구분한 것 역시 또한 특징적인 면이다. 중앙과 좌우 협실 서측을 각각 상으로 하였다.
  영녕전은 정전보다 한 단계 낮춰 지어졌으므로 월대 단도 정전의 월대에 비해 낮다. 그리고 계단도 가운데 몰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전은 증축 할 때마다 계단도 함께 옮겼으나 영녕전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초석과 신방석이 정전과 비교된다.
  영녕전까지 다 둘러본 후 다시 내가 오늘 둘러봤던 종묘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봤다. 종묘가 단순히 세계 유네스코에 등록된 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종묘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지만 세계에선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장중한 건물양식이라는 점과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으로 인해 불타 없어진 종묘를 다시 재건하고 증축하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상신을 잘 섬겨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믿었던 태조의 의지대로 시작된 종묘대제가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하에 있을 때 종묘를 누구나 쉽게 여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종묘 앞 지대를 높이고 종묘의 위상을 낮추게 한 점이 안타까웠다. 그들의 명목은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곳 앞의 계단을 땅으로 묻어버리면 백성들이 무의식적으로 종묘를 가볍게 여기고 그렇게 되면 종묘사직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제의 잔재 뿐 아니라 서울시에서 종묘 앞을 공원으로 꾸민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종묘는 역사속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모시는 곳으로 엄숙하고 조용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종묘 앞이 공원화 되면서 할아버지들의 쉼터가 되었고 시끌벅적하게 되었다. 오갈 때 없는 할아버지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종묘는 분명 엄숙하고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곳인데 공원이 되면서부터 술 취한 할아버지들이 종묘를 안방 드나들듯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종묘 앞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종묘를 답사하러 간 날도 종묘 앞에 할아버지들께서 굉장히 많이 계셨다. 두런두런 모이셔서 장기와 바둑을 두시기도 하고 같이 술을 드시거나 누워서 낮잠을 주무시는 분도 계셨다. 종묘 앞에 기념비 앞과 하마비 근처, 종묘로 들어오는 길 가 쪽 등 어느 곳 하나 더렵혀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서 종묘를 중시하는 생각이 무뎌졌다고 하더라도 너무하다고 생각되었다. 적어도 종묘대제가 열리기 바로 전날이라면 제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조용하고 건전해야 옳다고 생각되었으나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질 못했다. 종묘대제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신 전주이씨 분들도 종묘가 이렇게 공원화 되면서 지저분해지고 종묘의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어떤 취지로 이렇게 공원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묘의 본 의미와 중요성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 같다.


종묘를 현장답사 하고 난 후 느낀 점

  종묘를 답사하면서 ‘안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계속 되새겨졌다. 이전에는 문화재를 답사할 때 전혀 사전조사를 하지 않고 그냥 가서 사진만 찍고 앞에 안내문만 짧게 읽고 말았는데 이번 종묘답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모아서 종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현장답사를 하러 갔다. 자료를 모으고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종묘에 대해서 많이 알고 난후 실제로 답사를 하자 좀더 많이 와 닿았고 쉽게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종묘가 문화유산으로써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건축물 때문이 아니라 종묘의 기본적인 의미를 되살리는 종묘대제와 같은 행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좀더 기준이 된 것 같다. 형식도 중요해야겠지만 그 내용이 더 중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람료를 올려서 예쁘게 꾸미거나 공원을 유지하는데 돈을 쓰기보다는 높이 세울 건 높이 세우고 담아야 할 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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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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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 이 포스트 추천 한방 날리고 갑니다!!
    되게 꼼꼼하게 잘 적으신듯^^

    "일제의 잔재 뿐 아니라 서울시에서 종묘 앞을 공원으로 꾸민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종묘는 역사속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모시는 곳으로 엄숙하고 조용해야 하는 곳이다."

    이 부분은 저도 평소에 생각 하던 부분이었는데.. 되게 와닿았다는..^^

    잊지 않고 자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 어떤 것이든 사람의 손길, 발길이 닿는 곳은 훼손되기 마련이니..
    그만큼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7.08.27 12: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쓴 글이예요. 전공 수업 중 '인터넷 취재와 활용'이라는 수업이 있는데 과제로 제출했던 기사글이예요. 어느 문화재든 가기 전에 사전조사를 하고 가는 것과 그냥 가는 것은 확연히 차이가 나는것 같아요.^^

    2007.08.27 12: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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